우당탕탕 행복주택 입주기 (1) - 방 말고 집이 필요해!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여름입니다!
잘 계셨나요? 저는 4월 초 이사한 후로 정신없이 보내다가 돌아왔어요.
사회초년생이라 하기는 애매하지만, 여튼 아직까지 국가에서는 청년이라고 쳐 주는 나이인데요,
작년에 큰 기대 없이 LH 행복주택 입주 신청을 했다가 덜컥 당첨되어서 이사까지 해 버렸습니다.
행복주택 신청과 계약, 그리고 입주날까지도 실감이 안 났었는데요.
들어와 산 지 두달이 다 되어 가는 요즘에서야 정리할 짬이 나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나는 나와 가장 잘 지내는 사람
20대 초반부터 프로자취러의 길을 걸었던 여름 ..
처음부터 자의는 아니었지만 점점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수록
저는 깨닫게 되었어요.
세상에는 누군가랑 같이 사는 게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저처럼 혼자 있는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인 것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요.
가족이나 친구들과 새로운 사람들, 선배들을 만나 새로운 자극을 받는 일도 물론
일상에 큰 활력과 도움이 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틀은 행복이 1이라면 혼자 있을 때의 행복은 100일 만큼 ...
저는 혼자 있는 것을 진심으로 편해하고 좋아라 하는 사람이었어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당신과 내가 전혀 관계없는 남임을 인정한 후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지만요.)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을 때, 독립된 인격으로 가장 충분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또 그런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기도 해요.
독립의 감각
가끔 하늘 한자락이나 공유하고, 작은 성취에 기뻐해 주는 정도로 사람 사이는 유지될 수 없는 걸까요?
만날 때마다 더욱 깊은 이야기를 하고, 조금 더 격없어지고, 몰랐던 사실을 한 가지 더 알아야만
우리 사이가 의미있게 지속될 수 있는 걸까요?
저는 우리가 서로가 없더라도 본인의 인생을 색색깔로 가득 채워 가며 살고 있다가,
어느 지점에서 마주치면 그곳에서 각자의 시절을 잠시 공유했다가 다시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여러 개의 알록달록한 곡선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가 원하는 존재로 저를 만들어 가는 데에 영향을 주었던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공간이었습니다.
대학교 때 첫 독립을 하기 전까지 저희 집에는 제 방이 없었어요.
중학교 때 임대주택으로 이사오기 전까지는 모든 식구가 한 방에서 살았고요.
20살 때까지 저의 평생소원은
문 뒤나 화장실에서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되는,
혼자 집중해서 책 한 권을 읽을 수 있는 제 방을 갖는 거였어요.
이불 하나만 가지고 첫 독립했던 날,
가스가 연결되지 않아 아직은 찬물밖에 안 나오는 집에서 샤워를 하고,
제가 좋아하던 9와 숫자들의 1집부터 2집 앨범을 잔잔히 틀어 놓고 누워서 했던 생각들이 아직도 기억나요.
제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방에 살며 생각한 것들
'이런 작은 원룸에 사는데 읽고 싶은 책을 다 사다간 둘 곳도 없고 분수에 안 맞아'
하지만 저는 책이 정말 좋았어요. 읽고 싶으면 빌려서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지만
저는 좋아하는 작가의 책 몇 권쯤 새것으로 사서 밑줄치며 읽고 싶었고,
문학 계간지를 구독해 읽고 싶었고, 후원하는 어린이재단에서 나온 책자를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어요.
보다가 펑펑 울었던 어느 영화의 포스터와 각본집을 생각날 때 꺼내어 다시 보고 싶었어요.
책도 그렇고 언젠가 하고 싶었던 다른 취미들을 떠올릴 때마다 '이 방에서 ??'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싫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쪼잔하고 배포 작은 모습도 부끄러웠고,
어느 것도 포기하기 싫었어요.
'자취하면서 요리해 먹기 힘들다.. or 본가에서 이번에 좀 도와줬으면... '
독립하고 싶었던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본가에서 정신적으로/재정적으로 빨리 분리되고 싶었던 마음이기 때문에,
처음 몇 개월간은 본가와 전혀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반찬을 받거나 통화를 하다 보면 근황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고,
하다 보면 분명히 같이 살던 때로 금방 돌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은 둘째딸이 부모님 인생에서 아예 없었던 것만큼 제 존재감을 지우고 싶었어요.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너무나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부자연스러운 동시에 괴로웠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양쪽 중 누군가가 괴롭고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도 가족이라서 함께하고 싶다는 건
더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우리만의 안전지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땐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몰랐고, 다만 거리를 두고 찾아보고자 했을 뿐이지만요.
저와 부모님은 가족이지면 어쩔 수 없이 남이며, 사랑하며 아끼고 존중하는 동시에
간섭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어요.
(제가 그렇게 믿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적/ 재정적으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전까지는 뭘 해 달라거나 도와달라거나 하기가 싫었어요.
생각보다는 오래 걸렸지만 9년이 지난 지금은 만족합니다.
부모님은 이제 저희 집에 오셔서 같이 놀고 나서 서울 들러서 볼일 보고 본가로 돌아가시고요,
저의 결정과 의사를 존중해 주십니다.
무언가 하나 결정하려면 숨막히는 심리전과 설득과 회유와 눈물의 화해쇼를 거쳐야 했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감정적으로 너무나 가벼워졌어요. (저를 놓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왠만한 요리는 눈대중으로도 맛있게 할 줄 알게 되었어요. 자랑입니다. ㅋㅋ
방 말고 집이 필요해!
저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금은 불안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얼떨결에 첫 독립을 하게 되었어요.
대학은 고향에서 다녔고, 다니는 내내 알바와 과외를 했습니다.
집에서 잠자는 하루 5~6시간 빼고는 계속 일하는 곳이나 학교에 있었어요.
보증금조차 없는 상태로 나오게 되어 친한 친구에게 돈을 빌렸었고,
친구 역시 넉넉지는 않은 상황이라 늘 미안했어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구한 거처는 늘, 집이 아니라 방이란 말이 어울리는 곳들이었어요.
첫 시작이 그래서였는지, 원래 미혼의 20대 초반 혼자 사는 집은 그런 곳이라고 정해져 놓은 것처럼요.
이후 친구 집 얹혀살기, 고시원, 쉐어하우스, 다시 작은 원룸, 근린생활시설형 오피스텔 등.....
상황이 안정되지 않아 20대 내내 1년에 이사를 4번 했던 적도 있을 만큼 집을 많이 옮겼는데요.
그 중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곳이 없을 만큼 집이 아닌 방에서 혼자 사는 건 외로운 일이었어요.
사람이 함께 살고 안 살고를 떠나서요.
자는 곳과 먹는 곳, 쉬는 곳과 무언가에 집중하는 곳이 분리되지 않고
오로지 잠자고 먹는 것 외에 생각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 .....
물론 그 정도를 혼자 누리는 것이 어려웠을 때가 있었으니 감사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원하는 집을 찾아서
그 전까지는 시간이나 환경에 쫓기다시피 다음 거처를 정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더이상은 이런 식으로 다음에 살 곳을 정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 태어나는 건 제 의지가 아니었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배우며, 누구를 만나며 무엇을 먹을지는 모두
저의 의지로 더 나아질 수 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것과 다른 더 많은 것들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사를 많이 하다 보니 이사할 때마다 느껴졌어요.
이전 방 채광이 정말 안 좋았었구나. (그 방에 살때는 몰랐어요. 집에는 해가 늘 이 정도로 드는 줄 알았죠.)
그 고시원 더 살았었으면 폐병 걸렸겠구나. (숨도 못쉬게 기침하고 흉통이 쥐어짜듯 아파서 울었는데 원래 있던 기관지염이 심해진 줄 알았죠. 나와서 사흘만에 다 나았어요.)
방 안에 세탁기가 있으면 삶의 질이 심하게 떨어지는구나. 그리고 요즘 세탁기는 정말 조용하구나. (주말에 빨래하면서 낮잠 자기가 가능하다니..!)
어디든 제 발을 딛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내가 무엇을 몰랐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도 물론 좋았어요.하지만 사는 곳을 바꾸어서 삶을 바꾸고 싶다면, 기왕이면 원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구체적으로 그려야,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에 가까이라도 얻게 될 테니까요.
너무 길게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
생각보다 제 머릿속에 든 이사, 집에 관련된 생각이 많았군요. ㅎㅎ
다음 회차부터는 LH를 통해 행복주택 구하는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해요.
정보들은 LH 홈페이지에서 구하실 수 있으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풀어 보고 싶었어요.
조금 차가운 봄에 이사왔는데, 벌써 여름이 다가왔네요.
부지런히 쓰고 나서 또 재밌는 일상 이야기 있으면
블로그로 돌아올게요!